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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배구천재’ 배유나가 말하는 시련의 시간 그리고 결혼 더 스파이크 | 2020-10-29 |
기사보러가기![]() 인생을 살아가면서 누구에게나 한 번쯤은 시련이 닥치기 마련이다. 한국도로공사 미들블로커 배유나에게 부상 공백이 길었던 지난해가 그랬다. 배구를 시작한 이래로 마음고생이 가장 심했다. 하지만 훌훌 털고 다시 일어났다. 긍정적으로 세상을 바라봤다. ‘부상’, ‘FA계약’, ‘복귀’ 그리고 ‘결혼’까지. 배유나의 진솔한 이야기를 들으러 <더스파이크>가 김천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배구 시작 이래 가장 긴 공백기 “시간이 약이더라고요” 배유나는 2018-2019시즌 이후 어깨 수술을 하며 먼발치서 코트를 바라봐야만 했다. 2019-2020시즌 4라운드, 예상보다 이른 복귀전을 치렀지만 출전 네 경기 만에 또 한 번의 부상이 찾아왔다. 약 1년간의 오랜 재활 끝에 KOVO컵에서 모습을 드러낸 배유나의 얼굴에는 행복함이 가득했다. Q__<더스파이크>와 인터뷰 오랜만이시죠. GS칼텍스에 있었을 때 한 번 하고 도로공사 소속으로는 처음이에요. GS칼텍스 당시에는 많이 어렸었죠. 지금은 나이도 먹고, 결혼도 했고, 사진을 어떻게 찍어야 할지 아는 정도네요. Q__KOVO컵을 통해 정말 오랜만에 코트를 밟았는데 기분이 어땠나요. 엄청 떨리고 긴장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괜찮았어요. 그래서 오래 쉬었다는 느낌도 딱히 안 들었고요. 주위에서 ‘안 떨렸어? 긴장 안 됐어?’라고 물어보는데 그런 건 없었어요. Q__부상과 재활로 공백기가 있었지만 ‘그래도 배유나’라는 평가가 있었는데요. 에이, 전혀 아닌데요(웃음)? ‘배유나가 돌아오면 달라질 것이다’라는 소리를 듣곤 하는데 성적이 좋지만은 않아서 약간 부담감으로 다가오긴 했어요. Q__코트 안에서 정말 행복해 보이던데요. 엄청 행복했죠. 재밌기도 했고요. 이제 배구만 좀 더 잘되면 더 행복할 듯하네요. Q__가장 힘들었던 시기라고 하면 지난 시즌이 맞나요. 그렇죠. 사실 1년을 쉬어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어요. 어깨 수술을 하고 1~2개월은 심적으로 많이 힘들었어요. 시간이 약이라고 하잖아요.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어느 순간 보니 1년이 지나있었고, 또 코트 안에 들어가 있더라고요. 자연스럽게 극복했던 것 같아요. 주변 사람은 물론 남편도 옆에서 저를 잘 케어해주니까 긍정적으로 시간을 보낼 수 있었어요. Q__복귀한 지 네 경기 만에 다시 팔꿈치 부상을 당했는데, 트라우마가 생기진 않았나요. 부상이 있는 상태로 경기를 뛰었던 적이 많았어요. 그래서 부상을 당해도 케어하는 방법을 알고, 이겨내는 법을 충분히 깨우치고 있었거든요. 그 덕분인지 컨트롤 할 수 있다는 마인드가 강했어요. 그래서 트라우마는 크게 없었어요. Q__재활 후 한 시즌(2019-2020)을 통째로 쉴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복귀가 빨랐는데요. 본인 의지가 많이 작용했다고 봐도 될까요. 팀이 한창 좋은 상황이 아니었잖아요. 제가 완전히 힘을 실어 볼을 때릴 수 있을 만큼 몸 상태가 완벽하진 않았어요. 그래도 코트에 들어가서 흐름이나 연결 부분은 도움을 줄 수 있겠다고 판단했어요. 감독님과 상의 끝에 코트에 들어갔는데 본의 아니게 또 팔꿈치를 다쳐서 정말 속상했어요. 당시에는 ‘괜히 뛰었나?’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어요. 감독님께서 저를 배려해주신 것도 있었고 제가 하고자 하는 의지가 커서 들어갔던 건데도요. 지금 돌이켜보면 당시에 들어갔던 걸 후회하지는 않아요. 다만 다쳤던 그 순간만큼은 정말 힘들었어요. Q__어떻게 이겨내려고 했는지 궁금하네요. 제가 어깨 수술을 하고 난 후 팔꿈치를 다친 거잖아요. ‘어깨보다는 덜 아프겠지?’라는 생각을 했어요. ‘뭐 어깨 수술도 했는데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잖아’라는 강한 멘탈이 작용하더라고요. 시간이 지나면 어차피 다시 해야 하는 거니까 ‘이겨낼 수 있다’라고 긍정적인 쪽으로 컨트롤했던 것 같아요. Q__지금까지 배구를 하면서 가장 큰 공백기라고 봐도 될까요. 초등학교 3학년 때 배구 시작해서 단 한 번도 1년 이상을 쉬어 본 적이 없어요. 그렇게 꾸준히 배구를 해오다가 일 년이라는 공백기가 생겼어요. 처음에는 쉽지 않았지만 받아들이기로 했었어요. 좋게 생각하면 지금껏 쉴 틈 없이 달려왔으니까 어느 정도 휴식을 주자, 쉴 수 있는 기간을 주자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Q__코트 안이 아닌 밖에서 바라본 느낌은 어색했을 것 같은데요. 어땠나요. 맞아요. 그런 부분도 있었어요. 밖에서 바라보면서 도움이 많이 됐어요. 항상 코트 안에만 있다가 밖에서 동료들을 보는데 다른 부분도 있었고, ‘내가 저 상황이었다면 어떻게 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오히려 코트 밖에서 배구 공부를 많이 할 수 있었어요. Q__한유미 위원 유튜브에서 “쉬다가 나오니까 리프레시된 느낌이다.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라고 말했잖아요. 어떤 의미인가요. 1년이라는 시간을 아깝지 않게 쓰려고 노력했어요. 무릎, 어깨, 팔꿈치 등 그동안 좋지 않았던 몸을 다시 만들 수 있는 기간으로 보냈어요. 좋은 방향으로 생각하다 보니 금방 회복할 수 있었고, 배구를 더 오래 하고 싶은 마음이 커졌어요. ‘배구 천재’ 배유나를 향한 스포트라이트 어릴 적부터 남달랐던 운동신경 ‘배유나’하면 ‘배구 천재’라는 수식어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김연경의 후계자로 거론될 정도로 잠재력이 무궁무진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성인 대표팀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어릴 적부터 남다른 피지컬과 운동신경으로 항상 주목을 받아왔다. Q__배구를 어떻게 시작하게 됐는지 궁금하네요. 일단은 키가 커서 시작했어요. 친언니가 4학년 때 먼저 배구 제의를 받았어요. 저는 1학년 때 언니 따라 놀러 갔다가 감독님께 “저 2년 뒤에 배구하러 갈게요”라고 말했어요. 진짜 딱 2년 뒤에 저를 찾아오셨어요. 바로 다음 날 그 학교로 전학을 갔죠. 그땐 배구가 뭔지도 몰랐는데 그냥 하고 싶었어요. 재밌을 것 같았거든요. 운동을 좋아했고, 운동 신경이 뛰어났고 활동적인 아이였어요. 가만히 있지 못하는 성격이랄까? ![]() Q__가족 중 운동선수 출신이 있는 건가요. 없어요. 아버지가 키가 커요. 186cm정도? 제가 어렸을 때부터 키가 크니까 운동을 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으면 시키려고 하셨대요. 첫째 언니는 운동능력이 없다고 해서 안 시켰는데 말이죠. Q__어렸을 때부터 스포트라이트를 받아왔는데 그에 따른 부담감은 없었나요.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제가 에이스 역할을 주로 해왔어요. 프로에 입단하고 나서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소극적으로 플레이했던 게 없지 않아 있긴 했어요. Q__드래프트 이야기를 빼놓을 수가 없는데요. 인삼공사에 지명될 것이라는 모두의 예상을 깼잖아요. 그 이야기만 600번 넘게 한 것 같아요(웃음). 만약 제가 인삼공사에 갔다면 또 다른 인생을 살고 있지 않았을까요. GS칼텍스에서는 미들블로커, 윙스파이커, 아포짓 스파이커 등 여러 포지션을 소화했잖아요. 인삼공사에 갔으면 오로지 윙스파이커로만 기용하려고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러면 제 배구 인생이 어떻게 펼쳐졌을지 아무도 모르는 거죠. 지금처럼 미들블로커로 있을 수도 있고, 윙스파이커를 하다가 나중에 전향했을 수도 있고, 빨리 은퇴를 했을 수도 있고?(웃음) 그런 거죠 뭐. 인생은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몰라요. Q__GS칼텍스에 입단하고 프로 첫 데뷔전에서 엄청난 존재감을 보였잖아요. 기억나나요. (배유나는 NH농협 2007-2008 V-리그 여자부 한국도로공사와 첫 경기에서 서브 3개, 블로킹 4개, 후위공격 2개로 총 19점을 올리며 맹활약했다) 12년 전인가요? 사실 기억은 잘 안 나는데 엄청나게 잘했더라고요. 탑골공원에 올라온 영상을 봤어요. 그때 아마 후위 공격 하나가 부족해서 트리플크라운을 놓쳤어요. 진기록 세울 수 있었는데 아쉽죠. Q__프로 초반에 여러 포지션을 소화했는데, 혼란스러움은 없었나요. (배유나는 미들블로커, 윙스파이커, 아포짓 스파이커까지 소화할 수 있던 멀티 플레이어였다.) 장단점이 분명해요. 어느 포지션에 투입돼도 제 몫을 할 수 있으니 여기저기에 다 들어갈 수 있는 게 장점이라면 단점은 애매하다는 거예요. 여기도 아니고 저기도 아닌 느낌이랄까. 저는 최대한 좋은 방향으로 생각하려고 했던 게 어느 자리든 코트 안에만 들어갈 수 있던 것에 감사한 마음을 가졌어요. Q__한 위치에 자리 잡지 못하고 있을 때 가장 많은 도움을 줬던 분이 있을까요. 어렸을 때 (이)숙자 언니랑 배구를 많이 했어요. 4~5년 정도? 그때 숙자 언니가 많이 도와주셨죠. 제가 가운데서 어리바리하고 있을 때 세터 입장에서는 답답할 수도 있는데 이야기 많이 해주시고 볼도 많이 주셨어요. Q__언제부터 미들블로커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나요. 특별한 계기가 있을까요. 사실 어렸을 때는 윙스파이커를 하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공격 비중도 크고 점수도 많이 낼 수 있잖아요. 경기를 보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포지션이기도 하고요. 시간이 지나다 보니 자연스레 미들블로커에 정착하게 됐어요. 특별한 계기는 없어요. 지금 돌이켜보면 ‘미들블로커 하길 잘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Q__이숙자 위원, 김사니 코치, 이효희 코치까지. 국가대표 세터들과 모두 호흡을 맞춰봤네요. 이효희 코치의 은퇴가 더욱 아쉽지는 않았나요. 영혼의 콤비였는데. 사실 저는 더 같이하고픈 마음이 컸어요. 워낙 잘 맞았고 효희 코치님이 잘 맞춰 주셨으니까요. 좋은 기억이 많기도 하고요. 더 해주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코치님도 코치님만의 인생이 있는 거니까요. 그래도 지금 코치님으로 계시니까 도움이 많이 돼요. 그러면서도 아쉽고 아쉬운 마음(웃음)? 아련함? 살짝 ‘아 이제 언니를 놓아줄 때가 됐다!’라는 느낌이 들어요. Q__이효희 코치는 선수 때와 비교를 해보자면 어떤가요. 처음에는 제가 “언니! 언니!” 했는데 효희 코치님이 “언니는 무슨 언니야!”하고 대답하더라고요. 사실 코트 안에 있었을 때도 문제점이나 잘 풀리지 않는 걸 선수들한테 말해주셨는데, 이제는 코치로서 밖에 계시잖아요. 더 잘 보이시나 봐요. 바로바로 이야기해주세요. 그래도 전 아직 마음속으로 선수일 때가 더 좋았어요. 워낙 저랑 잘 맞았기 때문에…. 남편은 버팀목이자 멘탈 코치 배유나는 2019년 4월 21일 국가대표 수영선수 백승호와 4년간의 열애 끝에 결혼했다. 때로는 든든한 남편으로 때로는 멘탈 코치로 배유나에게 힘을 북돋아 주고 있다. 주말 부부로 지내는 남편 이야기에 배유나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이야기를 펼쳤다. Q__이제 다른 이야기로 넘어가 볼게요. 결혼 2년차에 접어들었는데 신혼생활이 궁금하네요 결혼하자마자 어깨 수술을 해서 10개월 정도는 집에 쭉 있었어요. 지금까지 운동하느라 못 붙어있었는데 그 기간에 지내지 못했던 거 잘 지내면서 있었죠. 아무래도 지금은 주말에만 볼 수 있는 주말 부부니까…그때가 그립기도 하고요(웃음). 결혼해서 좋은 점이 더 많은 것 같아요. 우선은 의지할 사람이 생긴 거요. 아까도 말했다시피 수술 후 1년을 쉰다는 것 자체를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는데 남편이 옆에서 많이 힘이 돼 줬어요. 같이 있어 준 게 아무래도 크죠. 그래서 잘 버텨낼 수 있었어요. ![]() Q__어떻게 만났는지 궁금하네요. 한 방송에서는 SNS ‘좋아요’를 먼저 눌렀다고 하는데요. 아 그거 사실 누가 누른지 기억이 안 나요(웃음). 아닌가? 일단은 진천선수촌에 들어가 있을 때 남편이 웨이트트레이닝 자세를 봐줬어요. 그때부터 뭐가 있었던 건 아니에요. 당시에 저나 남편 둘 다 만나는 사람이 있었어요. 그렇게 스쳐 지나갔죠. 시즌이 시작되고 배구를 보러 오겠다고 연락이 왔어요. ‘아 그때 웨이트 가르쳐 줬던 사람이구나’라고 기억이 났고 연락이 닿아서 지금 이렇게 결혼까지 하게 됐네요. Q__남편도 수영선수잖아요. 운동선수 부부로서 잘 맞는 부분이 많을 듯한데요. 저를 되게 강하게 키워요. 제가 가끔 힘들다고 하면 뭐가 힘드냐고, 그런 말 하기 전에 더 연습하라고 해요. 저한텐 멘탈적으로 도움이 많이 되죠. 또 남편이 개인 종목이다보니 정신적인 부분이 단체 종목보다는 더 중요하거든요. 기술 조언보다는 멘탈 쪽으로 많이 도움을 주는 편이에요. Q__운동선수 남편과 결혼생활에 장단점이 있다면요. 단점은 김천이라서 출퇴근을 할 수 없다는 점이고요. 이야기하면 안 되나(웃음)? 주말부부인 게 아쉽죠. 사실 저는 괜찮은데 남편은 집에 아무도 없으니 밥도 잘 못 챙겨 먹어서 안쓰러워요. 저는 숙소 식당에서 매번 고기 먹는데...오랜만에 보면 남편은 홀쭉해져 있어요. Q__김해란 선수가 2세 계획으로 은퇴를 했는데, 배유나 선수도 차후 그럴 가능성이 있는 건가요. 아직 크게 생각은 하고 있지 않아요. 2~3년 후에는 계획하지 않을까요. 지금 저는 2세보다는 배구가 우선이에요. 남편도 그걸 존중해줘요. 하고 싶을 때까지 하고 기다려 줄 수 있다고 했어요. 배구 열심히 해야죠! 가장 큰 자극제는 ‘배유나’라는 이름 세 글자 2018-2019시즌이 끝난 뒤 FA자격을 얻은 배유나는 도로공사와 재계약에 진통을 겪었다. 부상 문제와 여러 사정이 겹치면서 구단과 재계약을 놓고 갈등을 빚었다. 그로부터 며칠 뒤 조율 끝에 도로공사와 동행을 이어가기로 했다. 배유나에게 당시 느꼈던 솔직한 심정을 들어봤다. Q__무거운 주제로 넘어가 볼게요. 작년에 FA계약을 체결했는데요. 계약 전 팀을 떠날 것이라는 소문이 들렸는데 어떤 상황이었는지 들어볼 수 있을까요. 당시 계약을 하니 마니 그런 상황이었어요. 부상이 있었고, 사실 그런 부분에 있어서 계약이 쉽지 않겠다는 기사가 올라왔어요. 팀에서는 수술을 권유했고, 지원해준다고 했어요. 1년 재활을 하고 다시 계약하자고 하셨는데 전 그걸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어요. 쉬고 싶지도 않고, 어깨 수술을 하고 싶지도 않았죠. 수술하면 배구를 다시는 하지 못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FA였잖아요. 그렇게 계약하기는 싫었어요. 지금 돌이켜보면 어깨 수술도 잘 됐고 코트 안에 제가 있고, 컵대회도 뛰었고...모든 게 잘 풀렸어요. 그럴 줄 알았으면 빨리한다고 할 걸 그랬어요(웃음). 시간이 엄청 빠르게 지나간 느낌이에요.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지만 그땐 상황이 눈앞에 닥치니까 쉽지 않았죠. Q__김종민 감독이 배유나 선수와 함께하고자 하는 의지가 강했다고 들었어요. 감독님이 정말 많이 도와주셨어요. 마음속으로 같이 힘들어해 주셨어요. 그게 저는 너무 감사해요. 몸 상태를 봐가면서 훈련에서 배려를 많이 해주시고요. 제가 지금 이렇게 할 수 있는 것도 감독님의 배려와 아량? 큰 포용력과 통찰력(웃음). 너무 좋은 말이 많은가요? 근데 사실인걸요. 터닝 포인트라고 말하고 싶어요. 지금을 기점으로 새로운 몸 상태와 정신 그리고 배구 실력으로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에요. 열심히 해야죠. Q__이 자리를 빌어 김종민 감독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전할 기회를 드릴게요. 지금요? 감독님, 우리 좋았던 때도 좋지 않았을 때도 있지만 그런 기억은 모두 잊고 앞으로 좋은 기억과 추억만 쌓아가요. 좋은 일들만 가득했으면 좋겠어요. 파이팅입니다, 감독님! ![]() Q__힘든 시기도 있었지만 배구를 계속할 수 있는 원동력이나 자극제로 다가오는 건 뭔가요. ‘배유나’라는 이름이요! 어렸을 때부터 많은 주목과 기대를 받아왔잖아요. 그 스포트라이트에 맞는 이름값을 하기 위해 지금까지 계속 노력해왔던 것 같아요. 물론 지금도 현재진행형이고요. Q__그럼 배구를 해오면서 가장 발전됐다고 생각하는 점은요. 마인드? 멘탈이 성숙해졌어요. 좋았다, 성숙해진 멘탈! 비유 좋았죠(웃음)? Q__배구를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과 반대로 후회하는 순간이 있다면요.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통합우승했을 때요! 모든 선수가 그럴 거예요. 마지막에 공격, 블로킹으로 경기를 끝냈잖아요. 와…벌써 2년 전이네요. 그날을 기억하면서 지금도 그때만큼 몸을 끌어올리려고 하고 있어요. 가끔 영상도 찾아봐요. ‘아 이땐 이렇게 했지. 이렇게 해야 했지’ 하면서요. 후회는 한 가지만을 꼽을 순 없어요. 잘못된 플레이를 했을 때 또는 범실을 했을 때. 딱히 크게 후회하는 순간은 없는 것 같아요. Q__우승 이야기를 하니까 문득 궁금해졌어요. GS칼텍스에서 우승을 많이 경험했잖아요. 그때랑은 어떤 점이 달랐나요. GS칼텍스에 있었을 때는 외국인 선수가 가져가는 지분이 컸어요. 우리는 옆에서 도와준다는 느낌이 강했어요. 자유계약시절이라 기량이 뛰어난 선수들이 많았거든요. 지금은 그 제도가 없어지기도 했고 국내 선수들이 좀 더 가담해야 해요. 국내 선수들이 잘해야만 우승을 할 수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어렵게 우승을 하다 보니 더 극적인 기분이 들더라고요. Q__GS칼텍스 배유나와 도로공사 배유나는 어떤 부분에서 차이가 있나요. GS칼텍스 때는 지금보다 어렸으니까 웨이트 트레이닝의 중요성을 못 느꼈어요. 점차 나이가 들고 부상도 당하면서 웨이트 트레이닝을 통한 몸 관리가 크게 다가와요. 그때를 돌이켜보면 약간 아쉬워요. 어렸을 때 ‘더 열심히 몸 관리를 했으면 어땠을까?’ ‘잠을 조금만 더 일찍 잤으면 어땠을까?’하고요. 생각 없이 살던 시절이었으니까 거침없었죠. 지금은 하나를 하더라도 많은 생각이 따라와서 신중해져요. 그런 부분에서 차이가 있네요. Q__과거의 배유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유나야! 잠 좀 일찍 자고 웨이트 트레이닝 무게를 좀 더 올리고, 야간 운동도 좀 하고. 개인보강도 하고 남들보다 한 발 더 뛰어다녀야지! 당시에 안 했다는 건 아니지만 ‘좀 더 했으면 더 잘할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요. Q__미래의 배유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요. 유나야 너는 잘해왔고 앞으로도 더 잘 할 거야. 그러니까 너무 부담가지지 말고 몸 관리 잘해서 오래오래 배구하는 유나가 되길 바랄게! Q__어떤 선수로 기억되고 싶은가요. 어려운 질문인 것 같아요. 음…10~20년이 지나도 ‘배유나’하면 ‘아! 그 선수?’하고 바로 떠올릴 수 있는 선수가 되고 싶어요. 지금 ‘장윤희 선수’ 하면 바로 떠올릴 수 있고 기억에 남는 선수잖아요. 그렇게 바로 기억을 떠올릴 수 있는 선수요! 그럴 수 있겠죠? Q__차기 시즌 목표는 당연히 우승이겠죠. 첫 번째는 팀 성적이죠. 성적이 좋아야 우리 선수들이 모두 빛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저는 부상 없이 전 경기를 출전하고 싶어요. 한 걸음 더 나아가 욕심을 부리자면 부상이 없는 상태로 100% 좋은 컨디션을 끌어올려 잘했던 그때처럼 득점도, 블로킹도 많이 잡고 싶어요! Q__이번 시즌 도로공사 키플레이어는 누구라고 생각하시나요. 한 명을 딱 꼽을 수 없어요. 모든 선수가 자기 몫을 해줘야만 잘 될 수 있는 팀이라고 생각해요. 아무리 제가 잘해도 한 명이 삐끗하면 이길 수 없어요. 그래서 코트 안에 모든 선수가 키플레이어라고 생각해요. Q__배구를 그만두기 전까지 꼭 이루고 싶은 것이 있다면요. 리그 MVP는 너무 앞서가는 것 같고요. 물론 받고 싶긴 하지만요. 저는 라운드 MVP를 해보고 싶어요. 한 번도 못 해봤답니다. 목표로 잡겠어요! Q__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어릴 때는 어떤 걸 해도 다 힘들 거야. 체력 훈련을 해도 힘들고, 기술 훈련을 해도 힘들지. 그걸 참고 버티다 보면 언젠가 빛을 볼 수 있고 좋은 날이 성큼 다가올 테니 힘들다고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인내심을 갖고 언니만 믿고 따라와~ 분명 좋은 일이 있을 거야! Q__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요. 제가 일 년 동안 코트에서 사라져서 많이 당황스러우셨죠. 쉬고 있을 때도 응원 많이 해주신 덕에 성공적으로 복귀할 수 있었어요. 예전의 배유나를 기억해주시는 분들의 좋은 기억을 되살려드리고 싶어요. 다시 좋은 컨디션의 배유나를 만들어서 만족하실만한 플레이 보여드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많이 응원해주세요. ![]() - 배유나가 생각하는 ‘돌+I’- 좋은 말로 쾌활하다? 밝다? 상대방이 웃어주면 저도 기분이 좋고, 저도 웃으면 기분이 좋고 팀 분위기도 좋아지잖아요. 희생하는 거죠, 뭐. 이제는 가만히 있으면 “언니 기분 안 좋아요?”하고 물어본다니까요. 그래서 더 밝게 웃으려고 노력하는 편이고 후배들한테도 먼저 다가가서 장난쳐요. 그래야 팀 분위기도 살고 운동할 때도 재밌고, 긍정적인 효과가 많아요! - 내 친구 효진이는 대단한 선수 - 효진이는 정말 자기관리가 철저한 선수예요. 친구지만 어렸을 때부터 그런 점을 되게 높게 봤어요. 변함없이 항상 똑같은 루틴으로 하는 선수가 양효진이에요. 그래서 지금의 효진이가 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하고 싶은 것도 많았겠지만 효진이는 다 포기했거든요. 옛날에는 엄청나게 말랐었는데 어떻게 하면 살을 찌울 수 있을지 수도 없이 고민했어요. 저도 효진이를 쫓아가려 열심히 노력하고 있어요. 효진이가 높이도 좋고 블로킹 타이밍이나 손 모양이 좋아요. 신장 차이가 있지만 블로킹 영상을 가끔 보기도 해요. 같이 방 썼던 적이 있는데 효진이가 보강 운동하러 간다고 하면 ‘어? 나도 가야지’하고 따라갔어요. 좋은 영향을 많이 받았죠. 글/ 강예진 기자 사진/ 유용우 기자 (위 기사는 더스파이크 10월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기사제공 더 스파이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