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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마흔이 된 ‘엄마 선수’ 한국도로공사 정대영은 2007∼2008시즌 이후 13시즌 만에 처음으로 ‘블로킹 퀸’ 자리를 노리고 있다. 정대영은 세트당 블로킹 0.682개로 2일 현재 이 부문 선두에 올라있다(왼쪽 사진). 정대영과 동갑내기인 세리나 윌리엄스는 올해 호주오픈 테니스대회에서 출산하고 복귀한 후 첫 번째 메이저 우승을 노린다. 호주오픈은 윌리엄스가 2017년 임신한 몸으로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던 대회다. 한국배구연맹(KOVO) 제공·멜버른=AP 뉴시스
한때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한국도로공사 주전 센터 정대영(40)에게는 확실히 그렇다. 김세영(흥국생명)과 함께 프로배구 여자부 최고령 선수인 정대영은 2일 현재 세트당 블로킹 0.682개로 이 부문 1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2위는 한송이(37·KGC인삼공사·0.679개). 1, 2위 격차가 근소하지만 정대영의 블로킹 기록은 최근 늘어나고 있는 반면 한송이는 줄어드는 추세다. 만약 정대영이 시즌 끝까지 블로킹 선두 자리를 지키게 된다면 27세 때인 2007∼2008시즌(0.649개) 이후 13시즌 만에 ‘블로킹 퀸’ 자리에 오르게 된다.
2007∼2008시즌은 정대영이 현대건설에서 GS칼텍스로 팀을 옮겨 맞이한 첫 번째 시즌이었다. 사실 정대영은 2006∼2007시즌을 마지막으로 코트를 떠나려 했다. 몸 군데군데 부상을 달고 있었고, 결혼까지 앞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대영은 “때마침 자유계약선수(FA) 제도가 생겨 팀을 옮기게 되면서 마음가짐도 달라졌다. 그때까지 여자 선수에게 결혼은 곧 은퇴와 같은 말이었지만 그 고정관념을 깨고 싶었다”고 말했다.
정대영은 이적 첫해 곧바로 팀을 챔피언결정전 우승으로 이끌었다. 챔프전 최우수선수(MVP)로 뽑힌 정대영은 시즌이 끝난 뒤 또 한 번 그때까지 금기였던 낱말을 꺼냈다. “1년 뒤 2세를 낳겠다”고 선언한 것. 정대영은 2009년 프로배구 선수로는 처음으로 출산휴가를 내고 딸 김보민 양(11)을 낳았다. 자신의 배구 선수 인생을 걸고 낳은 딸 보민 양 역시 프로배구 선수를 꿈꾼다. 보민 양은 초등학교 4학년이 된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배구부 활동을 시작했다.
정대영은 프로 원년(2005년) 득점상과 수비상을 동시에 수상하면서 리그 MVP로 뽑힐 정도로 못하는 게 없는 만능 선수였다. 이제는 운동능력이 떨어진 게 사실이지만 노련미를 앞세워 상대 공격을 차단하고 있다. 이날 현재 정대영의 통산 블로킹은 996개로 4개만 더하면 여자부 두 번째로 통산 1000블로킹 기록도 남기게 된다. 정대영은 “(김종민) 감독님은 나이가 많다고 훈련에서 빼주시는 게 전혀 없는 분이다. 그 덕에 체력적인 면에서 후배들에게 크게 뒤처지지 않는 것 같다”며 “딸에게 더욱 자랑스러운 선수가 될 수 있도록 끝까지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새해 들어 불혹의 나이가 된 세 살 딸의 엄마 세리나 윌리엄스(40·미국)는 여전했다. 9월 만 40세 생일을 맞는 윌리엄스는 부상 후 4개월 만의 복귀 무대에서 건재를 과시했다. 세계랭킹 11위 윌리엄스는 1일 호주 멜버른에서 열린 여자프로테니스(WTA)투어 야라 밸리 클래식 여자 단식 2회전에서 다리야 가브릴로바(호주·452위)를 세트스코어 2-0(6-1, 6-4)으로 이겼다. 지난해 9월 프랑스오픈 2회전에서 왼쪽 아킬레스건 통증을 이유로 기권한 이후 처음 공식 대회에 나섰지만 자신의 서비스 게임을 한 번도 내주지 않는 안정적인 플레이로 완승을 엮어냈다.
이번 대회는 8일 개막하는 시즌 첫 메이저대회인 호주오픈의 전초전이다. 대회 장소도 호주오픈이 열리는 곳과 같다. WTA투어 통산 73승을 거둔 윌리엄스는 호주오픈 대비를 위해 이 대회에 참가했다. 호주오픈에서 우승하면 호주의 마거릿 코트(24회)가 갖고 있는 통산 메이저 최다 우승 기록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최고령 메이저대회 우승자로도 이름을 남길 수 있다.
1995년에 프로 데뷔한 윌리엄스는 27년째 현역 생활을 하고 있다. 40대에 엄마 선수로는 쉽지 않은 일이다. 윌리엄스는 임신 2개월 때인 2017 호주오픈 우승컵을 따내는 초인적인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2017년 9월 딸 알렉시스 올림피아 오해니언 주니어를 낳기 전후 선수 생활에 어려움을 겪었다. 출산 뒤에는 혈관 이상으로 치료를 받느라 세계 1위였던 랭킹이 450위권까지 밀렸다. 그래도 포기는 없었다.
2018년 윔블던 대회에서 준우승을 하며 “세상의 모든 엄마를 위해 뛰었다”고 말한 뒤 ‘슈퍼맘’이라는 애칭을 얻었다. 하지만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산후 우울증을 고백하기도 했다.
윌리엄스는 최근 영국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내 딸이 (내가 생각한 장소에) 있지 않는 것이 가장 두렵다”며 “나를 밤에 깨어 있게 하는 유일한 존재는 ‘내 딸’”이라고 말했다. 윌리엄스는 “(딸이) 18세가 될 때까지 하루도 떨어져 지내지 않을 것”이라며 딸에 대한 애정을 나타냈다. 딸 오해니언은 엄마를 따라 곧잘 테니스를 배우는 것으로 알려졌다. 윌리엄스는 최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테니스를 치고 있는 딸의 사진과 함께 “팔을 끝까지 돌리세요”라는 글을 남겼다.
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김정훈 기자 hun@donga.com
기사제공 동아일보